2008년 03월 28일
내가 사랑(욕망)한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를 향한 그녀의 사랑(욕망)이었다.
15. 사랑은 그녀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사랑이어서 연인과 헤어질 때 우리를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그녀를 잃었다는 슬픔이 아니라 사랑을 잃었다는 슬픔이다. 그녀와 헤어지고 난 후 사무치게 그리웠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를 향해 짓던 그녀의 수줍은 미소, 적막한 나의 끼니를 걱정하던 그녀의 근심 어린 목소리, 다른 여자에 한눈파는 나를 바라보던, 질투심으로 충만했던 그녀의 눈빛이었다. 그러니 내가 사랑(욕망)한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나를 향한 그녀의 사랑(욕망)이었다. 결별을 선언하던 날 그녀가 말했다. 날 찾고 싶어.
16. 수치심은 예속에서 온다. 롤랑 바르트의 말이다. 자신을 찾고 싶다고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는 명백히 수치심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진실된 고백이었기에 울림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찾고 싶어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었다. 육체적 관계를 통해 그녀의 사랑을 확인하려 할수록 나는 자괴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육체에 집착했고 집착할수록 그녀의 생리주기에, 그녀의 기분에, 그녀의 컨디션에 예속되었다. 결별하기 며칠 전 그녀와 나는 크게 다퉜다. 요즘은 키스도 안하려고 하잖아. 역시 치열교정기가 문제였다. 치열교정기는 그녀의 육체가 갖고 있는 물질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영혼으로부터 떨어져나온 그 무엇으로 전락시켰다. 전락해서 관계는 '자동화'되었고 영혼은 '소외'되었다. 그녀와 헤어지던 날 나는 말했다. 난 네 덧니를 진심으로 사랑했어. 내 목소리가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도 움찔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그녀에게 바치는 최초의 '고백'이었다.
김경욱, <낭만적 서사와 그 적들>
16. 수치심은 예속에서 온다. 롤랑 바르트의 말이다. 자신을 찾고 싶다고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는 명백히 수치심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것은 진실된 고백이었기에 울림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찾고 싶어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감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그 말은 내가 하고 싶었다. 육체적 관계를 통해 그녀의 사랑을 확인하려 할수록 나는 자괴감에 몸을 떨어야 했다.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녀의 육체에 집착했고 집착할수록 그녀의 생리주기에, 그녀의 기분에, 그녀의 컨디션에 예속되었다. 결별하기 며칠 전 그녀와 나는 크게 다퉜다. 요즘은 키스도 안하려고 하잖아. 역시 치열교정기가 문제였다. 치열교정기는 그녀의 육체가 갖고 있는 물질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함으로써 영혼으로부터 떨어져나온 그 무엇으로 전락시켰다. 전락해서 관계는 '자동화'되었고 영혼은 '소외'되었다. 그녀와 헤어지던 날 나는 말했다. 난 네 덧니를 진심으로 사랑했어. 내 목소리가 듣기에 민망할 정도로 떨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도 움찔했다. 생각해보니 그것은 그녀에게 바치는 최초의 '고백'이었다.
김경욱, <낭만적 서사와 그 적들>
# by | 2008/03/28 22:22 | 포스트잇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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